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에하라 쇼조 (문단 편집) == 경력 == 어린 시절 전쟁 때문에 피난으로 대만과 오키나와의 여러 섬을 전전했으며 [* 우에하라라는 성도 오키나와에서는 흔한 성이다. 일례로 친인척 관계는 아니지만 [[우에하라 타카코]]도 오키나와 출신이다.] 한 번은 피난선이 태풍으로 조난을 당해 2주 동안 표류해 죽음의 공포를 겪고 배 안에 있던 토마토 케첩만 빨아먹고 생명을 유지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케첩을 입에도 대지 못했다고 한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전쟁을 극도로 싫어하며 반전은 그의 영원한 테마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이 폭격맞는 장면이 작중에 많이 나오는데 일본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고 오키나와 주민으로서 전쟁의 원인이 일본이란 것도 잘 알고있어서 군국주의 비판 및 일본의 전쟁 책임도 심도있게 다룬다.[* 괴기대작전에서 우에하라가 쓴 '24년째의 복수'란 에피소드는 [[진주만 공습]]의 원인이 일본에 있다는 걸 은연 중에 암시하고 넘어간다. 일본은 공식적으론 이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공적인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를 언급할 수 없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언급하고 지나간 것.] 또한 조상님이 일본이 [[류큐 왕국]]을 침공할 때 결사 항전하다 처형된 정치인 '쟈나 리잔'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나키스트까진 아니라도 현 일본 정부를 좋게 보지 않는다. 오키나와는 일본과 다른 나라이며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있는 상태라고 보는 사람이다. 문학을 공부하며 오키나와 전쟁의 현상을 고발하는 각본을 구상하던 중에 오키나와에서 살 때부터 친구였던 [[킨조 테츠오]]의 권유로 [[츠부라야 프로덕션]]에 입사했다. 킨조의 소개로 킨조의 스승 세키자와 신이치(関沢新一)를 만나 각본을 배웠다. 이후 츠부라야 프로덕션 문예부에 들어가 울트라 Q부터 킨조를 대신하는 보조각본가로 활약했다. 킨조는 같은 오키나와 출신으로서 혼슈 본토 인들에게 차별을 받아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우에하라를 특히 신뢰해서 자신이 없을 때는 중요한 설정도 건들 수 있게 했다. 또한 우에하라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천재였던 킨조를 항상 존경했다고 한다. 킨조가 츠부라야에서 쫓겨날 때 같이 회사를 나와 69년부터 프리랜서 각본가로 전환했다. 그가 [[울트라 세븐]]에서 쓴 각본의 평이 좋았기 때문에 [[돌아온 울트라맨]]에서 메인 각본, 시리즈 구성을 맡게된다. 이때 '''돌아온 울트라맨 33화에서 [[우주조사원 메이트 성인|무시무시한 사고]]를 쳐서 전설이 되었다.''' 이때 츠부라야에게 제대로 찍혀서 보조 각본은 맡아도 시리즈 구성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70년대부터는 [[토에이]]하고도 관계를 뚫었으며 [[요시카와 스스무]] 프로듀서와 친해져 [[우주형사 시리즈]]와 [[슈퍼전대 시리즈]][* 디자인의 아버지는 [[이시노모리 쇼타로]]지만 초기작의 각본 대부분을 맡아 지금의 전대 시리즈의 근간을 쌓은 스토리의 아버지는 우에하라 쇼조다.]의 메인 각본을 담당해 히트 시리즈로 만들었다. 또한 애니메이션에도 참여해서 [[겟타로보]], [[UFO로보 그렌다이저]], [[우주해적 캡틴 하록]] 등을 담당했다. [[가면라이더]]의 시작에도 관여했는데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메뚜기 모티브의 히어로를 디자인했을 때 방송국에서는 '이런 기괴한 히어로가 먹힐 리가 없다' 라고 거절하고 있을 때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그의 주변인들이 우에하라에게 '제발 방송국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울트라맨만 따라하면 안 된다. 새로운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고 설득하여 가면라이더 방영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원래 각본도 하려고 했는데 직후에 [[돌아온 울트라맨]]을 해달라는 츠부라야의 요청이 들어와서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이 일이 고마웠는지 [[이나즈맨]], [[힘내라!! 로보콘]], [[비밀전대 고레인저]], [[가면라이더 BLACK]] 등의 작품을 우에하라에게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가면라이더 BLACK의 경우 전대와는 다른 제작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1쿨 정도까지만 참여하고 관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우에하라의 과격한 각본은 방송심의를 통과하기 점점 힘들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방송일이 줄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헤이트 스피치]]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현대의 젊은이들이 전시의 일본과 다름없는 짓을 하고있다며 이런 미친 짓은 하지 말라고 비판하고 있다. 2017년에는 80세의 나이로 키지무나-Kids 라는 소설을 출판해 문학상을 수상했다. 나이를 먹으니 글이 더 잘 써진다며 앞으로도 계속 현역으로 활동할 것을 밝혔다. 2020년 1월 2일 간암으로 인해 82세에 사망했다. 말을 빼앗긴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오키나와어]]을 쓰는 히어로물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그 구상을 이루지 못했다. [[https://www.okinawatimes.co.jp/articles/-/26034?skin=amp|참고 인터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